Essay

    봄밤

    봄밤은 변방의 이야기다. 요양원이라는 물리적으로는 우리와 가깝지만 심리적으로는 브라질보다도 먼 그곳의 이야기. 영경과 수환은 배신당한 이들이다. 수환은 거래처 사장과 아내에게 배신당했다. 영경은 전남편과 전시부모, 그리고 두 언니에게 배신당했다. 영경은 그 후유증으로 술을 마시다 결국 자신에게도 배신당했다. 의사도 거기에 거들었다. 그는 몸의 반응은 알코올이 가져다주는 거짓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몸의 떨림은 물론, 자신의 감정까지 믿지 못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환상이라고 치부해야 했다. 아니, 어쩌면 그녀 자신이 모든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일수도 있겠다. "산다는 게 참 끔찍하다. 그렇지 않니?" 작가가 표현해낸 요양원에서의 삶은 끔찍하다. 수많은 갈등과 반목, 욕망에 대한 패배 그리고 가난까지. 그곳..

    플랫 라이너 (2017)

    죽음보다 더한 공포 공포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죽음 이후에 오는 허무에 대한 거부 또는 두려움일까? 는 조금 생각이 다른 것 같다. 영화는 죽음을 아주 가까이 둔다. 의대생인 앨렌 페이지는 영화 초장부터 죽고(=임사체험) 싶어하는데, 그 이유는 -나중에 밝혀지지만- 죽음을 통해 죽어버린 동생과 만나기 위해서였다. 영화 초반, 죽음은 날아가버린 인연을 잡을 수 있는 동아줄이었다. 앨렌 페이지는 동생을 만났을 뿐만 아니라 다른 능력도 얻게 됐다. 죽음으로 인해 뇌가 활발히 활동해 자신이 가진 기억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0년 전에나 연주했던 피아노를 수준급으로 칠 수 있게 되었고, 한번 봤던 투약설명서는 한글자 한글자 생각이 났다. 다른 동료들은 그의 이런 능력이 탐났다. 일년에 한명씩 ..

    최소한의 근대성을 위해

    중심에서 밀려나는 것. 그게 제일 무서웠다. 고등학교 때 그나마 공부한 이유는 서울에 가기 위함이었다. 부산 외곽에 살았던 소년에게 서울은 대한민국의 한중간 같았다. 그렇게 서투른 기대를 안고 서울에 갔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변방이었다. 구글 지도를 끝없이 확대하듯, 중심이라는 관념은 가까이 갈수록 축소할 따름이었다. 조급했다. 변방에서 중앙으로 가까이 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고3 때 겪어보지 않았던가. 지금처럼 풀어져 서는 안 된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땐 이미 지쳐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자리에 어느 정도 만족했던 것 같다. 나는 그게 -영악하게도- 소박한 심성이라고 생각했다. 작년에 작은 좌절을 맛봐야 했을 때, 나는 쉬이 일어날 수 없었다. 내 존재가 흔들리는 듯했다. '중심'이라..